소녀전사 알리타에서 그레이전사 사라 코너까지
소녀전사 알리타에서 그레이전사 사라 코너까지
  • 정길화 편집위원
  • 승인 2019.09.30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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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 알리타에서 그레이전사 린다 해밀턴까지

영화 속 여성전사의 충일(充溢)은 시대정신.

영화 알리타 이미지 캡쳐
영화 알리타 이미지 캡쳐

[뉴스트러스트=정길화편집위원] 출장을 오가는 비행기에서 뒤늦게 영화 <알리타:배틀 엔젤 Alita: Battle Angel>을 보다. 기내 극장은 놓치거나 지나간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다. <알리타....>는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에 로사 살라자르 주연으로 나와 있지만, <아바타>와 <타이타닉>을 만든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을 맡았고 사실상 CG가 주인공인 영화다. CG 캐릭터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는 얘기는 본 것 같은데 기록을 검색해 보니 한국 흥행은 2백만을 넘지 못했다.

영화 <알리타>는 일본의 SF 만화 ‘총몽’을 원작으로 이를 각색했다고 한다. 알리타 Alita는 소녀 전사다. <레옹>의 마틸다(나탈리 포트만)나 <한나>(시얼샤 로넌)의 계보를 잇는다고 할 수 있다. 생각난 김에 보태면 소녀 전사로는 <니키타>, 이를 리메이크한 <니나> 그리고 애니메이션 영화 <뮬란>도 있다. 여성 전사로 범위를 넓히면 <소머즈>의 린제이 와그너, <원더우먼>의 린다 카터(<원더우먼2>는 갤 가돗),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안젤리나 졸리)까지 들 수 있을까.

인류의 멸망이나 문명의 대전환 나아가 지구 행성의 치명적 타격이나 몰락을 소재로 한 작품은 많다. <터미네이터 1>의 1997년,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오딧세이>, 마야 달력의 <2012년>, <백투더퓨처 1>의 2015년, <블레이드 러너 1>의 2019년 등이다. 이들 영화가 예언한 해당 연도가 모두 다 적중없이 허망하게(?) 지나가자 영화 <알리타>는 아예 서기 2563년에서 시작한다. 설마 현생 인류 중에서 누가 이 결말을 검증하겠느냐는 식이다. “모두가 갈망하는 공중도시와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고철도시로 나누어진 26세기. 고철 더미 속 모든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난 알리타는 마음 따뜻한 의사 이도의 보살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영화 사이트 참조)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눈길을 끄는 하나의 장면이 있다. 의사 이도가 고철 쓰레기더미에서 빈사(瀕死)의 알리타를 구조해 복원, 재생 수술로 구원한다. ‘쓰레기장에서의 우연한 발견’은 <리얼 스틸>에서 찰리 켄튼(휴 잭맨)과 맥스(다코다 고요)가 고철 로봇 ‘아톰’을 찾는 장면과 유사하다. 깨어난 알리타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데...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오리진으로 하여 영화 <ET>, 그리고 유영호 작가의 <미러맨 mirror man>(상암동 MBC앞 조형물)에서 오마쥬되었던 바로 그 유명한 손가락과 손가락의 만남 즉 핑거터치(finger touch) 장면이 나온다. 라캉 식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두뇌를 가진 기계 소녀가 거울을 통하여 ‘상상세계’에서 ‘상징세계’로 이행하는 순간이다.

영화, ET

거울에 비친 모습은 내 것이면서 동시에 내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정립 허상이다. 그것은 내 이미지이기는 하지만 내 자신의 실체는 아니다. 손을 뻗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만지면 자신의 살이 만져지는 게 아니가 매끈한 거울의 표면이 만져질 뿐이다. 자크 라캉은 어린 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이에 동일시하면서 자아가 구성된다고 보았다. 이것이 거울 단계(mirror stage)다. 이러한 '거울 단계 이론'은 인간이 스스로 인식하는 주체의 불완전성을 제시한다. 과거의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나 기계인지 인간인지 불확실한 경계선에서 새로운 세상을 위해 적들과 맞서 싸우는 소녀전사 알리타의 ‘자아 인식 통과 장치’로 거울이 사용된 것은 철학적 사유가 뒷받침된 것으로 보여 매우 그럴 듯하다.

유영호작가, 미러맨(MBC상암)
유영호작가, 미러맨(MBC상암)

유영호 작가의 미러맨은 한 인간이 거울에 투영된 자신의 또 다른 실체와 핑거터치로 소통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모습으로 구현되어 있다. 그래서 미러맨은 복수 mirror men를 쓰지 않고 단수인 mirror man으로 표기한다. 미러맨은 또 다른 이름은 ‘성찰하는 인간’ 즉 ‘호모 레플렉툰트(homo reflectunt)’다. 미러맨은 현재 에콰도르 적도선에 서 있다. 작가는 독일 베를린의 동서독 분계선, 이스탄불의 아시아 유럽 경계선에도 작품을 설치하려고 추진중이다. 미러맨은 달리 말하면 경계선의 인간(marginal man)이기도 하다. 고뇌하는 인간의 숙명이다. <천지창조>에서 <ET>로 그리고 <미러맨>으로 확장되었던 핑거터치는 <알리타>에서 다시 한번 재매개 또는 전유된다.

린다 해밀턴

거울과 핑거터치의 의미를 생각하는 동안 <터미네이터> 시리즈 6편에 해당하는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Dark Fate)>가 곧 개봉된다는 소식이 뜬다. 예고 기사를 보니 <터미네이터>가 1편에서 5편을 지나는 동안 꼬이고 꼬인 스토리가 다시 한 번 속편을 짜내는 모양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1, 2에서 인류의 미래 지도자 존 코너의 어머니로 활약하는 사라 코너역 린다 해밀턴의 재소환이다. 1956년생인 그녀는 역할상 거의 생얼굴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소녀 전사’가 아닌 ‘그레이 전사’라고나 할까(차마 ‘할머니 전사’라고는 말할 수 없고...). 마틸다, 한나, 알리타 등 소녀 전사에서 원더 우먼과 라라 크로포트를 거쳐 사라 코너까지... 여성전사의 충일(充溢)함은 당대의 시대정신으로 떠오른다.

정길화, MBC PD, 언론학 박사
정길화, MBC PD,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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