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량 의 "사람 사는 이야기" (소년은 행여, 소녀의 눈에 띠어 그녀가 부끄러워 할까봐...)
장량 의 "사람 사는 이야기" (소년은 행여, 소녀의 눈에 띠어 그녀가 부끄러워 할까봐...)
  • 장량 편집위원
  • 승인 2019.10.07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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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트러스트=장량편집위원] 1970년 대 어느 해.

국민 학교 오 학년 소년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손재주가 남달라 뭐든 만들기를 좋아했고, 특히 비행기를 좋아 했다.


소년의 바이블에 다름 아닌 ‘학생과학’에 실린 1:1 청사진을 보고 대나무 살을 깎아 촛불에 휘어 날개를 만들고 습자지를 붙여 글라이더를 만들기도 했고, 용돈을 모아 고무 동력기 키트를 사서 조립하기도 했다.

소년이 만든 모형 비행기는 여느 고등학생이 만든 것보다 더 성능이 우수해, 모형비행기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학생 과학’에 실린 모형 글라이더 키트의 광고를 보고 말았다. 
 대나무 살을 휘어붙이는 어설픈 모형이 아니었다.

무수한 부품이 발사 나무판에 새겨져 있었다. 마치 실제 비행기의 부품을 축소해 놓은 것 같았다. 광고 속의, 완성되어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모습이라니!

소년은 그날 저녁부터 자신이 조립해 만든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


소년의 가정은 부유한 편이나, 형제가 다섯 이었다. 현명하신 부모님들은 우애를 끊는 편애를 우려해서 다섯 아들 중 누구에도 따로 특별한 선물을 사주지 않았다.

따라서 비행기를 사려면 몇 달간 용돈을 아껴 모아야 했다.


그렇게 오매불망 비행기 꿈을 꾸던 어느 날,

소년은 학교에서 짝꿍으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일요일 날, 전 가족이 잔디 씨를 채취하러 간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잔디가 외국에서 인기가 있어 골프장과 축구장에 심으려고 국산 잔디 씨를 비싸게 사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온 가족이 일요일이면 야산과 무덤 가로 나가서 잔디 씨를 훑아 판단다.

소년의 집은 도시 변두리 야산 아래 있었고, 소년은 커다란 잔디밭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깨알보다 더 조그만 잔디 씨를 어떻게 따야 팔 만큼 모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가느다란 줄기 끝에 줄줄이 매달린 열매를 한 줄기 씩 손으로 훑어 내서는 백년을 모아도 비행기를 살 수 없을 터였다.

소년은 고민을 하다가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알루미늄 도시락이었다.

씨가 맺힌 잔디밭에 손바닥을 펴 가리고 알루미늄 도시락의 한쪽 면을 손바닥에 밀어 붙이면 그 사이의 잔디 씨 줄기가 모이고 도시락의 날카로운 면을 그대로 위로 훑어 올리면 잔디 씨가 우수수 도시락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낱알을 수확하는 홀태를 만든 것이다.


대문 앞 자투리땅을 침범한 야생 잔디에 홀태를 시험해 본 소년은 쾌재를 불렀다.


 돌아 온 일요일.

소년은 두 살 아래 동생을 꼬였다. 동생은 숙제를 보살펴주고 학교에 함께 가면서 나쁜 녀석들에게서 보호해 주는 형의 말을 거스르는 법이 없어서 형제는 도시락 두 개와 비닐봉지를 가지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뒷산에는 그 도시에 상수도물을 공급하는 배수지가 있었다.

산 중턱 높은 곳으로 수돗물을 끌어 올려 그 수압으로 시내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것이다. 물론 배수지 주변은 함부로 사람이 드나들 수 없도록 철조망이 쳐져 있었지만, 동네 개구쟁이 꼬마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배수지는 산 중턱에 어마어마하게 큰 물탱크를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고 잔디를 심어 관리하고 있었다. 축구장보다 더 큰, 잘 가꾸어진 한국 야생 잔디 밭이었다!


꼬마 형제가 철조망에 뚫린 개구멍을 통해 배수지로 갔을 때, 배수지에는 벌써 다른 손님이 와 있었다.

잔디 밭 건너편에 할머니와 손녀로 보이는 소녀가 엎드려 잔디 씨를 채취하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형제는 잔디밭을 기어 다니며 부지런히 씨를 훑기 시작했다.

소년이 발명한 홀태는 콤바인처럼 성능이 좋았다. 우수수 쏟아지는 씨앗을 보고 신바람이 난 형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확에 열중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둘이 채취한 씨앗을 한 봉지에 담으니 제법 묵직했다.

친구는 편지 봉투 하나만 가득 모아도 제법 큰 돈으로 팔 수 있다고 했다. 소년의 눈앞에 비행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형제는 손바닥이 화끈거리고 무릎이 아파 잠시 허리를 폈다. 그러고 보니 반대 쪽에서 다가오던 할머니와 손녀가 눈앞에 있었다.


그들도 힘이 들었던지 할머니가 손수건을 펴 잔디밭에 깔며 말했다.


“아가야. 좀 앉다 쉬다가 따자. 바지에 풀물 들지 않도록 여기 손수건 위에 앉아라.”
손녀가 대답했다.


“아녀요. 할머니, 할머니가 깔고 앉으셔요.” 


 “아니다. 한 벌 밖에 없는 바지에 풀물이 들면, 내일 학교에 어떻게 가려고 그러냐. 네가 앉거라.” 손녀가 손수건 위에 앉았다.


형제는 다시 잔디 씨를 훑기 시작했는데, 할머니와 손녀의 대화가 소년의 귀에 들렸다.


“할머니. 아버지 산소에도 이렇게 잔디가 잘 자랐으면 좋겠어요.

이 씨 팔지 말고 두었다가 아버지 산소에 뿌리고 싶어요.”


 “아니다. 무덤을 만든 지 몇 달 되지 않아서 아직 잔디가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벌겋게 보이는 거야.

이 씨는 팔아서 네 운동화를 사기로 했잖아.”


엎드려 잔디를 훑던 소년이 곁눈질로 손녀의 운동화를 보았다. 바닥이 다 닳아 구멍이 나고 위쪽 천도 너덜너덜해 걸레 같았다.

소년은 그만 잔디 씨를 훑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꼭 손녀의 운동화를 훔치는 기분이 든 것이다.


이때, 할머니가 형제에게 말을 걸었다. “애들아! 배고프지? 이거라도 먹을래?.”
하시며, 삶은 고구마를 내밀었다.


소년은 멀뚱히 할머니 손에 들린 고구마를 보다가 소녀를 보았다. 그리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오 학년 까지 한번도 같은 반이 아니었고, 아는 체를 해본적도 없었지만, 같은 국민 학교, 같은 학년 여학생이었다. 소녀도 소년이 동창인 것을 눈치 챈 듯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보았다.


틀림없이 그 아이였다. 올 봄에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기차길에서 사고를 당하여 돌아셨다는 그 아이.


어머니는 벌써 몇 년 전에 가출해 할머니와 단 둘이 남게 되었다는 그 아이가 틀림없었다. 그때 불우 학우를 돕자고 전교생이 동전을 모으고 쌀을 봉지에 담아 가져가기도 했었다.

 
할머니와 손녀는 도시락 홀태를 알지 못해 손으로 한줄기 씩 일일이 훑었는지, 할머니 곁에 놓인 봉지는 납작했다. 형제가 수확한 양의 오분지 일도 되어 보이지 않았다.


소년의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다.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던 소년은 도시락 통으로 잔디 씨를 훑는 시범을 한 번 보인 다음 할머니의 손에서 고구마를 받아 들고 형제가 몇 시간을 기어 다니며 모은 씨앗 봉지를 할머니 손에 들려주며, “고구마 값이에요.”


하고는 도시락 통을 할머니 곁에 내려놓고 영문을 몰라 하는 동생의 손을 잡아끌고 냅다 뛰어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 후, 학교 운동장에서 본 그 소녀는 파란 잉크색 새 운동화를 신고 깔끔한 새 바지도 입고 있었다.


소년은 행여, 소녀의 눈에 띠어 그녀가 부끄러워 할까봐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그 소녀도 지금은 그때의 할머니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장량, 1989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 1990년 스포츠 서울 신춘문예 추리부문 당선 * 쓴 책 : 위조진폐. 예술가의 연인. 핵심. 사랑특급. 대통령의 밀사 외 단편 다수.
장량, 1989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 1990년 스포츠 서울 신춘문예 추리부문 당선 * 쓴 책 : 위조진폐. 예술가의 연인. 핵심. 사랑특급. 대통령의 밀사 외 단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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