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량 의 "사람 사는 이야기"(돌아가신 선친의 유품 속에서 발견한 ‘편지 봉투’를 내가 가지고 있다)
장량 의 "사람 사는 이야기"(돌아가신 선친의 유품 속에서 발견한 ‘편지 봉투’를 내가 가지고 있다)
  • 장량 편집위원
  • 승인 2019.10.2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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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트러스트=장량편집위원] 가문의 비밀

1967년과 1968년.
이 년에 걸친 가뭄은 혹독했다. 가뭄 극복을 위해서 군인들에게 특별휴가까지 주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수많은 농민들이 농촌을 떠났다. 예나 지금이나 천재지변에 있어서 가장 취약한 계층은 빈민이었다. 도시에는 걸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농촌에서도 굶어 죽는 사람이 생겼다.

1968년 겨울. 

여름 가뭄만큼 이나 혹독하게 추운 그 겨울. 여름에 와야 할 비가 눈이 된 모양,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제공, 위키백과 본이미지는 기사와 직접적 관계없음.
제공, 위키백과 본이미지는 기사와 직접적 관계없음.

호남선 종착역의 늦은 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다른 그곳의 역전 국밥집 앞에 한 여인이 쓰러져 있었다.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누더기를 덕지덕지 겹쳐 걸치고 떡이 진 머리카락을 보아하니 걸인이 아니면 부랑자였다. 

겨울은 언제나 가난한 이들에게는 여름보다 가혹한 법!
쓰러진 여인 위로 눈이 쌓여갔다.
가게 앞에 쓰러져 손님을 쫓고 있는 사람을 좋아할 주인은 없으니, 득달같이 달려 나온 주인이 여인을 두드려 깨웠다. 가까스로 고개를 쳐든 여인의 때로 얼룩진 뺨은 동상으로 부풀어 있었고, 갈라터진 입술은 검게 죽어가고 있었다.

역전 광장은 험한 공간이다. 그곳에서 철야 식당으로 생존하려면 보통 강단으로는 어림없을 수밖에. 주인은 단호하게 여인의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그때, 나지막하지만, 단단한 목소리가 주인의 손길을 멈추게 했다.

“김 사장! 무슨 짓인가!”

그 사람은 중절모를 쓰고 모직 코트를 입고, 부츠를 신고 있었다. 역전 통을 통틀어 그렇게 차려 입은 사람은 그 한 사람 뿐일 터였다.
“아이고! 회장님. 이 거지가 문 앞에 쓰러져 손님을 쫒고 있어서요.”
거지라는 말에 여인이 도리질을 치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주인 앞에 내밀며 목이 말라 갈라진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나, 거지 아니구먼유.”

여인이 쥐고 있는 것은 편지 봉투였다. 역전 상인 연합회 회장이 봉투를 받아 들여다봤다.
보낸 주소는 기차역 화물 취급소였고, 받은 주소는 강원도 민통선 부근이었다.
“아이 아버지 찾아 왔는데 아무도 없어유.”
그러고 보니, 누더기 속 여인의 배가 만삭이었다.

“거기는 아침이 되어야 짐 나르는 인부들이 나오는 곳이요.”
강원도 산골에서 서남쪽 끝 항구까지. 남한을 대각선으로 긋는 가장 먼 길을 온 것이었다. 당시의 교통 사정으로는 연결이 잘되어도 2,3일 길이었다.
회장이 한숨을 푹 쉬더니 주인에게 말했다.

“따뜻한 가게 안으로 들이세. 국밥 한 그릇 어서 말아 내고.”
주인은 내키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회장의 말을 거절하지 못했다.
여인의 눈물이 국밥그릇에 방울방울 떨어졌다. 회장은 국밥 값을 치르고 식당 뒤 여인숙 할머니를 불러 방값까지 내고 당부했다.

“따뜻한 물로 씻도록 하고 연탄 불구멍 확 열어 뜨시게 재우셔요.”
그리고, 여인에게 따뜻하게 말했다.
“깨끗한 얼굴로 내일 아침에 아이 아빠를 찾아 가세요.”
여인이 허리춤 전대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십 원짜리 지폐 몇 장을 꺼냈지만 회장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여인이 고개를 수도 없이 숙이며 여인숙 할머니를 따라갔다.

다음날 아침 일찍.
국밥집 사장이 역 앞 큰길 건너에 있는, 회장이 운영하는 곡물 도매상으로 황급히 달려왔다.
“회장님. 그 여자가 아이를 낳으려 합니다. 여인숙 할매가 회장님 모셔오라네요.”
회장이 가보니, 벌써 양수가 터지고 진통이 시작되고 있었다. 당시는 병원에서 아이를 낳는 때가 아니었다. 다행히 여인숙 할머니가 아이를 여럿 받아 본 산파 수준이어서 순조롭게 아이를 받아 냈다. 아들이었다.

출산이 진행되는 사이에 회장은 여인의 편지 봉투를 들고 화물 취급소로 가서 아이의 아버지를 수소문 했다. 역에서 대기하다 화물을 하역하거나, 짐수레로 옮겨 주는 일을 하는 일용직 노동자였을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가까스로 강원도에서 온 젊은 사람과 노동자 합숙소에서 며칠 함께 지냈다는 사람을 찾아냈다.

“그 사람, 여기서는 혼자 먹을 밥값도 벌 수 없겠다며, 홍어 배 한철 타서 목돈 만들어 마누라 데려와야겠다며 흑산도 들어간 지 며칠 되었지요.”

깨끗이 씻은 얼굴을 보니 이십 대 중반의 젊은 여자였다. 여인의 딱한 사정이 알려지자, 역전 둘레의 상인들이 너도 나도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기도 했고, 식당에서 음식을 보내주기도 했다. 회장의 주도로 상인연합회에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 주기도 했다. 여인숙 할머니도 방값을 받지 않았다. 회장이 흑산도 파출소에 남편의 이름을 알려 아이 아빠를 찾았다. 하지만, 그런 이름으로 승선한 사람이 없었다.

뭔가 사연이 있음을 눈치 챈 회장이 여인에게 비밀 보장을 약속하고 사정을 물었다.
젊은 부부는 강원도 깊은 산골의 화전민 자식들로 둘이 눈이 맞아 그냥 산속에 너와 움막을 짓고 동거하며 화전을 일구었는데... 욕심을 내어 큰 밭을 만들려 불을 넓게 잡는 바람에 큰 산으로 번져 어마어마한 산불을 내고 말았다는 것이다. 실화 범이 된 남자는 체포되기 전에 야반도주해 강원도에서 가장 먼 곳까지 도망쳤고... 실명으로 배를 탈 수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여인은 필사적으로 남편을 찾았지만, 갓난애를 데리고 붓기도 빠지지 않은 몸으로 한 겨울에 흑산도를 들어갈 수는 없었다. 회장이 인맥을 동원해 여인에게서 들은 인상착의를 흑산도 현지 주민들과 어부들에게 뿌렸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인 듯한 사람이 탄 배가 뒤집어져 선원 모두 실종되었다고...

아이가 태어난 지 보름 후.
여인은 부적처럼 품고 왔던 편지 봉투에 자신이 지은 아이의 이름을 적어 갓난애의 머리맡에 두고 아무도 몰래 야간열차를 타고 떠났다.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주소가 적혀 있다 한들, 불타버린 산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고... 여인의 이름이 실명이라 할지라도 그때는 전산망이 없어서 추적할 길이 없었다.

결국, 회장이 아이를 맡았다.

그리고...
결혼 후 십 년이 다 되도록 자식이 없는 사촌 처제에게 입양을 시켰고, 처제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극비리에 서울로 이사를 갔다. 

아이는 잘 자랐다.

미남에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하고 야무졌다.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취업을 해 승승장구, 이사가 되었다.
본인은 물론 그 누구도 입양된 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아이가 열 살 때 쯤 생모가 회장을 찾아 왔다. 새 남자를 만나 아이를 키울 형편이 된다는 것이었다. 회장은 모른다고 모질게 잘랐다.
그 후로도 십 년 정도의 간격으로 그 여자가 역전을 배회하는 것을 상인들이 목격하고 쑥덕이고는 했지만, 그들도 아이에 대해서 알지 못해 들려줄 단서가 없었다.

오십년이 흘렀다.

엊그제.
호호백발이 된 그 여인이 대를 이어 국밥집을 하고 있는 사장의 아들에게 죽기 전에 단 한번 만이라도 아이를 보고 싶다고, 팥죽 같은 눈물을 쏟으며 연락처를 놔두고 갔다고 한다.

어찌해야 할까. 어찌해야 할까.

돌아가신 선친의 유품 속에서 발견한 ‘편지 봉투’를 내가 가지고 있다. 이모부는 몇 년 전에 타계 했지만, 이종 동생은 홀로 남은 이모님을 끔찍하게 아끼고 모시는 소문난 효자다. 
(실화를 일부 각색함)

장량, 1989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 1990년 스포츠 서울 신춘문예 추리부문 당선 * 쓴 책 : 위조진폐. 예술가의 연인. 핵심. 사랑특급. 대통령의 밀사 외 단편 다수.
장량, 1989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 1990년 스포츠 서울 신춘문예 추리부문 당선 * 쓴 책 : 위조진폐. 예술가의 연인. 핵심. 사랑특급. 대통령의 밀사 외 단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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