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웅 다큐멘터리 기념관’을 제창한다
‘정수웅 다큐멘터리 기념관’을 제창한다
  • 뉴스 트러스트=정길화 전 MBC PD
  • 승인 2020.01.2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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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웅 다큐멘터리 기념관’을 제창한다 – 다큐멘터리스트 정수웅 감독을 그리며


현장을 지킨 열정의 다큐멘터리스트
한중일 PD포럼은 그의 또다른 분신
평전, 특별전에 기념관 제안 잇따라

정수웅감독

다큐멘터리스트 정수웅 감독이 세상을 떠나고 보름이 지났다. 비록 자신의 부고(訃告)를 알리지 말라고 유언을 했다고 하지만, 이 땅의 매체에서 고인의 별세 뉴스를 찾아볼 수 없었다. 장례식 3일 후, 유일하게 한국PD연합회에서 발행하는 <PD저널>만이 그의 소식을 알렸다. 한 시대를 풍미한 다큐멘터리스트에 대한 작별의 의례(儀禮)로는 참으로 아쉽고 실망스런 일이다. 

35년 전 정수웅 감독이 MBC에서 <인간시대> 특집 ‘현해탄 저편, 의지의 젊은 3세들’을 연출하고, 제주도 해녀 다큐멘터리인 <우도 해녀의 출가>를 제작할 1985년 당시, 필자에게는 그를 도와 새내기 조연출을 했던 내력이 있다. 말하자면 방송사에 갓 입사한 1년차가 대가를 모신 것인데 여러모로 부족했던 점이 송구스럽다. 이제 페이스북에서 뒤늦게 소식을 알고 고인을 추모할 수 있을 뿐이다. 

“생전의 선한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영면하시길...”
“언제나 기획안 들고 다니시던 그런 열정적이셨던 선배님이셨는데요. 하늘나라에서도 원하시는 일을 하시면서 평안하셨으면 합니다.”
“다큐멘터리계에서 전설이었던 분. 최근까지도 다큐 제안 프리젠테이션을 하시며 현장을 발로 지키셨습니다. 오래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부디 평안하게 영면하세요.”
“노익장을 보이시며 현장을 누비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한국다큐 발전을 이야기했던 선배님 모습, 늘 귀감이었습니다.”
“후배를 선배 대하듯 조심스럽고 따뜻했던 그 분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취재하고 촬영하시던 생전의 모습이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일생을 다큐멘터리 현장에서 일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아른거립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을 추모하는 필자의 페이스북에 댓글로 오른 방송계 후배, 지인들의 글이다. 공통적으로 현장, 열정, 다큐멘터리 등의 단어가 등장한다. 그는 현장의, 열정의, 다큐멘터리스트였던 것이다. 1973년 KBS에 입사한 이래 일본 NAV, MBC, 다큐전문 제작사 <서울다큐> 등을 거치면서 46년 동안 오로지 다큐멘터리에 대한 집념과 투혼으로 일관한 정수웅 감독을 설명할 수 있는 말로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지 않다.   
그에게는 골든하프상 수상, 방송대상 4년 연속 수상, 88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영상 총감독, 통일언론상 특별상 수상, 일본방송프로그램센터·일본방송인회 주최 ‘방송인의 세계 명작품·명감독’ 선정 등 수많은 수상 리스트가 있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상의 목록이 아니라 작품의 필모그라피(filmography)에 있다. ‘PD는 프로그램으로 말한다’는 금언은 정수웅 감독에게서 더욱 적확하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는 정감독의 분신(分身)인 그의 작품들을 대면할 기회가 없다. 지상파, 종편, 케이블, DMB, IPTV, OTT, 유튜브... 등 어떤 플랫폼에서도 그를 추모하는 특별 편성이나 앙코르 방송을 볼 수 없었다. 채널은 많아도 프로그램은 없다. 더욱이 다큐멘터리는 시간의 마모성을 뛰어넘는 영상예술이자 기록이다. 그의 프로그램 중에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가 새로워지는 작품도 많다. 혹은 전과 후의 맥락을 되새기면서 의미망을 확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다수다.       
“다큐PD의 역사인데 저희들이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네요. 지금이라도 ‘정수웅 평전(評傳)’을 만드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이는 <단박 인터뷰> 등으로 KBS PD를 역임하고 지금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있는 홍경수 교수의 제안이다. “고독한 그러나 시대정신의 파수꾼이셨던 선배님, 절대 평화의 위대한 진실의 품에서 편안하소서. 차제에 방송회관이나 영상자료원에서 ‘정수웅 다큐멘타리 특별전(特別展)’을 열 것을 제안합니다.” 이는 8대 PD연합회장을 역임한 김승수 PD의 의견이다. 
평전도 특별전도,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기록정신에 충실한 당대의 다큐멘터리스트 고(故) 정수웅 감독에 걸맞는 추모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여기에 더하여 ‘정수웅 다큐멘터리 기념관(記念館)’의 건립을 제창한다. 이제 우리 방송계에도 한 개인을 기리는 공간의 확보가 필요하다. 불가능한 일은 결코 아니다. 방송계 후배들이 뜻을 모으고 힘을 합하면 능히 솔루션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정수웅 감독의 또 다른 ‘분신’은 한중일 3국의 PD가 함께 모여 프로그램을 보며 토론하는 ‘한중일 프로듀서 포럼’이다. 이 행사는 2001년 11월 ‘제1회 아시아 방송프로듀서 포럼- 1회 한일 선상(船上) 심포지엄’의 방식으로 시작되었고, 2003년 3회부터는 한중일 3국이 참가하는 ‘동아시아 방송프로듀서 포럼’으로 발전했다. 지난해에는 ‘다채‧다원:아시아 문명의 다양성’을 주제로 제19회 행사가 중국 귀주성에서 4박 5일간 개최된 바 있다. 한국의 PD연합회, 중국TV예술가협회, 일본방송인회 주최로 열리는 한중일 PD포럼은 이제 방송계에서는 대표적인 국제행사가 되었다.  
이 한중일 PD포럼은 모두가 익히 알 듯 정수웅 감독의 집념과 네트워킹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격렬한 역사와 첨예한 현실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가 부딪치는 동아시아에서, 3국의 방송PD들이 상호간의 공존과 평화, 번영을 위해 프로그램을 놓고 토론하는 자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기실 그동안 포럼에서는 과거사와 관련한 한중일의 견해차로 아슬아슬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가령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제14회 한중일 PD포럼에서는 일본의 만주침략에 대한 역사왜곡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라 포럼이 일시 파행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자리가 없었다면 이런 차이를 인식할 기회도 없었으리라는 점이다. 이제 2020년에는 20회 한중일 PD포럼의 개최를 앞두고 있는 바, 정수웅 감독의 정신을 후배 방송인들이 어떻게 구현해 낼 것인지가 과제다. 
 
“자신은 우주에서 온 스파이라고 하셨는데 우주로 돌아가셨군요. 무덤에도 카메라를 들고 갈 거라고 하셨던 말씀도 생각나네요. 카메라를 잘 챙겨 가셨기를...” 이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장정훈 감독의 댓글이다. 실제로 ‘우주에서 온 스파이’는 정수웅 감독의 자칭 트레이드 마크다. 그 누가 스스로를 두고 이렇게 대담하고 기발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정수웅 감독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는 말년에 파킨슨병으로 지병이 깊어가는 와중에도 오로지 프로그램만을 생각하고 끝없는 탐구정신을 실천했다. 필자의 카톡을 살펴보면 2019년 4월에 보내주신 <親에 대한 의미>라는 글을 찾을 수 있다. '서로 친하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말인가. 우리들 관계에 있어야 할 기본원리, 근본 감정은 친(親)이다. ..' 
후배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이라고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그의 다음 작품 주제가 바로 이것이었을까. 돌이켜 보니 직접 뵈온 지가 참으로 오래되었다. 그저 송구할 따름이다. 정수웅 감독의 유지(遺志)라고 생각하여 삼가 ‘親에 대한 의미’를 전재한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IP. 

<親에 대한 의미>

어떤 마을에 어머니와
아들이 살았다.

하루는 아들이 멀리
볼 일을 보러 갔다.
저녁에 돌아온다고 하였다.

그런데 저녁이 다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많이 되었는데도
아들이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걱정이 태산 같다.
아들이 왜 안 돌아올까.

도둑이나 강도한테
살인을 당하였는가,
술이 취하여 남과 다투다
사고를 일으켰는가.
어머니는 안절부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불안과 걱정으로 견딜 수가 없다.
어머니는 마을 앞에 나아갔다.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가 않는다.

멀리까지 바라보려면
높은 데 올라가야 한다.

어머니는 큰 나무 위에 올라가서,
아들이 오는가 하고 눈이 빠지도록 바라보고 있다.

그 정성스러운 광경을
글자로 표시한 것이 친(親) 자다.

나무[木] 위에
올라서서[立],
아들이 오기를 바라보고[見] 있다.
이 3자가 합하여서 친(親)자가 되었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아들 오기를 바라다보는
부모님의 지극한 마음,
그것이 친(親)이다.

친(親)은 어버이 친 자다.
어머니(母親),
아버지(父親),
어버이는 다정하고 사랑이 많다.
어버이는 나와 제일 가까운 분이다.

그래서
친구(親舊),
친절(親切),
친밀(親密),
친목(親睦),
친화(親和),
친애(親愛),
친숙(親熟),
친근(親近)이란 낱말도 생겼다.

또한
절친(切親)이니
간친(墾親)이니 하는
다정한 말이 나왔다.

친(親)자 밑에 붙은 말 중에 
나쁜 말이 하나도 없다.
 
서로 친하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우리들 관계에 
있어야 할 기본원리, 
근본 감정은 친(親)이다.

정길화(MBC PD, 언론학 박사) 
필자: 정길화 (전 MBC PD, 제12대 한국PD연합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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